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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순교에 사용 된 돌맹이

스데반 집사님의 믿음

순교자로 알려진 스데반이라는 인물은 사도행전을 통해 그의 설교와 순교 장면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순교하기까지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유지했으며 스데만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진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말씀들로 유추해서 스데반이 순교를 하기까지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들 중 한 명으로 사도행전 6장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처음 소개됩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구제와 봉사 업무를 보다 공정하게 처리할 의무가 있었고, 스데반도 그 일의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봉사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깊은 영성과 말씀의 이해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 절대적인 신뢰를 가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항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에 은혜와 권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믿음은 말보단 행동 중심이었습니다. 믿음과 은혜가 충만하였던 스데반은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한 자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언제난 성실하고 불공정을 두려움 없이 담대함으로 지적했으며,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뿐만이 아닌 행동으로 증거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은 당시 유대 지도자들과 논쟁할 때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할 정도로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습니다. 이는 스데반이 얼마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아주 깊이 풍성히 아는 자였는지 보여줍니다. 머리로만 하나님말씀을 알고 있었다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진리를 전하는 일을 주저하였을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하고 일관적인 태도를 고수했던 스데반의 믿음은 교회를 왔다 갔다만 하는 수준을 넘어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깊은 믿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믿음을 통해 오늘날 믿음은 마음속의 감정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결단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명설교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 7장 전체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 스데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며 초대교회 설교 중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는 구약의 역사 전체를 보며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유대 지도자들의 불신앙과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에게 거침없고 서슴지 않는 지적을 해왔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하며,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왜 명설교 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식 전달이 목적이 아닌 듣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찌르는 예언자적 메시지였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려 하고 불편한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은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불편한 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설교자가 청중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포하는 것은 설교자로서의 사명이고 중요한 가치입니다. 불편할까 진정으로 전해야 할 것을 전하지 못한다면 진리는 왜곡될 것이고 예수를 배척한 자들의 죄를 지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며 선포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청중들 또한 설교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우리의 삶을 점검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스데반의 순교

순교하면 자연스레 죽음이 떠오르고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비극일 뿐이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스데반의 죽음 즉, 스데반의 순교는 그 어떠한 죽음보단 위대하고 아름다운 죽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설교를 하지 않았다면, 혹은 설교를 통해 유대 지도자들을 지적하지 않거나 불편한 말들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본인의 목숨은 연명할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우리들이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스데반의 명설교가 끝나자 설교를 들은 청중들이 분노하여 주변에 돌을 주워 스데반을 크게 내려칩니다. 돌에 맞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그들을 저주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그의 목숨보다 중요한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스데반이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는지 또 한 번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다음 자신을 돌로 내려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수백 번 저주를 퍼부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축복하며 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말씀과 동일한 용서의 표현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고 믿었으며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끝에 본인이 가장 사랑했던 예수님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죽는 순간까지도 그의 믿음을 지켰고, 그의 마지막이 우리의 관점으로 죽음이라는 점에서 비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스데반은 순교 속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의지할 수 있었고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본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충격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순교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 모두 스데반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했기 때문에 순교를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순교는 하나님에게 나의 목숨까지도 드리고 나의 전부를 드리는 영광스러운 사명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