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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큰 물고기, 회개, 메시지)

저스트포커스 2025. 6. 6. 22:10

목차



    요나를 삼킨 물고기 사진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

    요나는 구약성경의 소예언서 중 하나인 '요나서'의 주인공이자 선지자입니다. 히브리어 이름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북왕국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로, 열왕기하 14:25에 등장하면서 실존 인물임이 확인됩니다. 요나하면 떠오르는 것은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인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 명령을 듣고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치기 위해 항구도시인 요바로 가서 배를 탑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도망치게 된 것입니다. 요나는 도망치기 위해 배를 탔고 바다에는 큰 폭풍이 일어납니다. 선원들은 각자의 신들에게 기도했지만 요나는 선장이 그를 깨워 기도하라고 하기 전까지 깊은 잠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찾는 제비 뽑기에서 요나가 걸리게 됩니다. 제비 뽑기를 통해 뽑힌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친 자라고 선원들 앞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원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살기 위해서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그러자 바다는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요나가 밤낮 삼일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물고기는 히브리어로 '다그 가돌', 직역하면 '큰 생선'을 뜻합니다. 정확한 종은 나오지 않지만, 전통적으로는 고래나 커다란 바다 생물로 여겨집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큰 물고기까지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큰 물고기를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뱃속에 있는 동안 요나는 그동안 도망치느라 하지 않았던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요나가 뱃속에서 한 기도는 생존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진심 어린 회개와 헌신의 고백이었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령하셔서 요나를 육지로 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도구를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요나를 삼킨 물고기 이야기를 통해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도망칠 때 구원의 도구를 예비해 놓으시고 기회를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니느웨의 회개, 요나의 반응

    하나님은 회개를 통해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에게 니느웨에게 회개를 선포하라고 다시 명령하십니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순종하여 니느웨에 들어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라는 메시지만 전합니다. 짧고 단호한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은혜나 용서의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는 백성 전체가 금식하며 옷을 찢고 회개를 했고, 왕이 솔선수범하여 금식과 기도를 선포합니다. 또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 금식을 함으로 전면적 회개를 통한 전심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니느웨의 반응을 보시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려다가도 회개하는 자의 태도와 마음을 보시고 심판을 멈추시는 분이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회개를 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니느웨의 회개를 보고 하나님은 기뻐하셨지만 요나는 매우 싫어하며 성을 냈습니다. 요나가 분노한 이유는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고,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고 억압하던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들의 멸망을 원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 어떤 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니느웨가 구원받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니느웨로 가서 메시지를 전하기 싫었던 것이었습니다. 자기 말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체면 때문에도 불만이 있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최우선시하던 요나는 이게 정의가 맞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솔직하게 항변하듯 여쭈어봅니다. 요나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식물을 통해 알기 쉽게 가르치십니다. 박넝쿨이 자라서 요나를 그늘지게 하고 벌레에 의해 시들고, 요나가 박넝쿨 죽은 것에 분노할 때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해 성내는 것이 옳으냐?" 이 사건은 요나가 박넝쿨을 키우면서 갖는 애정처럼 하나님관점으로 니느웨가 하나님에게 박넝쿨 같은 존재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박넝쿨이 죽는 것은 걱정하고 분노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고 걱정하는 대상인 니느웨는 신경 쓰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했을 때 요나는 자기중심적 분노와 편견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궁휼과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지자의 사명

    요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선지자의 사명과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삶을 본인이 먼저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메시지를 받는 입장에서 더 깊이 와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처음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니느웨라는 이방 민족이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요나의 마음 한 구석엔 용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판단하기에 부당한 용서는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부당한 용서로 받아들인 요나의 연약함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회개케 하시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나의 태도를 뭐라고 비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원수까지는 사랑할 마음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축복보다는 저주를 일삼는 모습이 요나의 모습과 같게 느껴지게 합니다. 요나 이야기를 통해 선지자는 메시지를 외우는 자가 아니라, 그 메시지를 살아내는 사람이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듣기 좋은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닌 때로는 자신조차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요나는 완벽하게 사명을 해내진 못했지만, 그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교육 방법 안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