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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허락하신 욥의 고난을 바라본 욥의 친구들 반응
욥기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는 고난을 받기 싫고, 복만을 원하는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기 꺼려지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욥의 고난을 욥의 친구들은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인내를 했는지, 하나님이 욥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고난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욥기를 보게 되면 총 42장으로 쓰여 있으며, 3분의 2 정도 욥의 친구들이 등장해서 논쟁을 벌입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엘리바스, 빗달, 소발 그리고 후에 등장하는 엘리후까지 총 4명입니다. 모두가 욥의 고난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이야기했고, 친구들은 고난의 이유는 죄 때문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찍어놓고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으로 제한되어 있으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친구 중 한 명인 엘리바스라는 데만 사람은 친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고난은 죄에 대한 징벌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욥이 의로웠다면 이런 고난은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욥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논리에는 욥은 의롭지 않아서 고난을 받았지만, 본인은 의롭기 때문에 고난을 받지 않는다라는 교만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빌닷이라는 수아 사람도 마찬가지로 욥의 자녀들이 죽어서 힘들어하는 욥에게 죽음의 이유 또한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로 소발이라는 친구는 욥의 하는 말들을 무례하다고 비판하며 하나님은 욥의 죽게 하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자비하신 분이라고 하나님을 왜곡합니다. 그리고 욥의 죄가 생각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단언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 중 가장 젊은 친구인 엘리후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교육적 고난을 강조하긴 했지만 여전히 욥의 무죄를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구절 '시작은 미비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을 빗달이라는 친구가 욥에게 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고 욥이 친구를 정죄하면서 위로해 준 답시고 네가 지금은 죄가 있어서 고난을 받지만 회개하면 하나님이 너를 용서해 주실 거야라는 말입니다. 말만 들어서는 좋은 말과 좋은 글귀이지만 인용하거나 누구에게 말해줄 때는 이 배경까지도 함께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친구들의 반응을 통해서 우리는 함부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은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친구들의 반응들을 보고 옳지 않게 얘기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욥에게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는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은 욥의 무죄를 인정하셨습니다.
욥의 인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자인 욥은 부유했고 자녀가 많았고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보고 하나님에게 욥을 시험해도 되나고 물어봅니다. 욥은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이지만, 경외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것들이 많기 까닭이라고 이간질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딱 끊어서 시험하지 말라고 했으면 좋았겠지만 제한적 허용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알고 계셨고 욥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에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욥의 고난은 욥의 죄 때문에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욥은 재산과 자녀들을 한날에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한 피부병이 욥의 온몸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고 욥의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기 바빴습니다. 지금 소개한 고난들 중 한 가지만 겪더라도 너무나도 힘들었겠지만 욥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때 욥은 믿음을 그가 고난을 받은 직후 하나님께 한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고난을 당한 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취하실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통해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숨을 가져가신다 해도 하나님을 바라본다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목숨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욥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황과 감정이 욥을 뒤덮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욥은 하나님께 따지기도 하고 이유를 묻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등지지는 않았습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붙어만 있으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능력이 없고 연약해서 등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너무 지쳐서 하나님께 쓰러져 있어도 하나님은 궁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 욥이 보여준 인내를 한 마디를 얘기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내라는 말은 고난이 없다면 훈련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인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할 수 있고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도 욥의 인내를 대단히 여겨 욥을 인내의 대표자라 이야기합니다.
욥이 깨달은 고난의 의미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서 욥이 깨달은 고난의 의미는 욥기에도 기록된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 구절은 욥이 그동안은 하나님에 대해 지식으로만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고난을 통해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욥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고난을 허용해주시지 않을 수도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만약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을 체험해서 알게 될 일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정확한 이유를 물으면서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진리를 깨달은 욥은 더 이상 남들이 말하는 내가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 것인가? 의 대한 답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질문은 더 이상 욥에게 무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질문을 하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욥에게 자연과 우주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 수 있고, 반대로 우리가 의지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욥의 고난을 바라볼 때 많은 사람들이 욥의 친구들처럼 생각을 하며 판단하지만 욥기를 제대로 안 사람은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잘못 선택해서 스스로 자초한 고난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